신중하고 균형있는 신앙생활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의지와 겸손은 반드시 짝을 이루어 함께 가야할 요소입니다. 먼저 신앙생활은 본인의 의지가 없으면 시작 되지 않습니다. 교회를 다녀 보겠다는 것도, 교회 봉사를 하는 것도, 또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도 본인의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또 하나님을 향한 새로운 헌신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도 나의 의지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간혹 하나님의 섭리만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우리 의지는 아무것도 아니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섭리이고 계획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것은 너무 치우친 생각이고, 하나님의 계획과 역사에도 인간의 의지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의지가 없으면 하나님의 역사도 시작되지 않는 경우를 성경에서도 종종 볼 수가 있지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새로 신앙생활을 시작하시는 분들께 의지적인 결단을 많이 강조하는 편이지요.
그런데 이런 식으로 자신의 결단에 따라 신앙생활을 시작하고 어느 정도 발전을 이루면 반드시 따라오는 것은 나에 대한 자랑스러움입니다. 내 능력으로 여기까지 왔다는 뿌듯함이지요. 그런데 이 뿌듯함은 나의 교만으로 자라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교만이 되면 그 교만이 나의 신앙의 성장을 방해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의지를 내려놓고, 겸손한 마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겸손에 머무르다보면 또 새로운 도약을 위해 우리의 의지가 필요한 때가 오게 됩니다. 따라서 신앙은 이 의지와 겸손 사이에서 반복해서 균형을 잡아가야 하는 것 같습니다.
신앙적 의지가 강했던 대표적인 사람은 사도바울이었습니다. 그는 우리 식으로 얘기하면 모태신앙이었습니다. 난지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았고, 베냐민 지파이고, 좋은 선생 밑에서 잘 배운 사람이었고, 율법도 열심히 지키던 사람이었습니다. 크리스천이 되고 나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어느 날 그 모든 열심을 오물처럼 여기겠다고 선언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열심과 노력조차도 예수님을 알아 가는데 방해가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이 왜 예수님을 아는데 방해가 될까요? 왜냐하면 이 열심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의 노력이 되어 버리고, 그렇게 무엇인가를 이룰 때 따라오는 자신의 교만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도 내가 이루었다는 생각 뒤에 따라오는 교만해진 마음. 그래서 그는 고백합니다.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주겠습니까?" 그래서 그는 예수님을 알아 가기 위해서 그의 스스로의 노력을 포기하기로 한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그렇다면 우리는 열배 백배 더 교만한 사람들입니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평생을 이 교만과 싸우겠다는 마음을 먹어야 하고 끊임없이 나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혹시 또 교만해져 있지는 않은지.. 그리고 욥과 같은 자세를 취해야 합니다. 욥은 아들들이 잔치를 끝내면 혹시 지었을 죄를 위해서 번제를 드렸다고 하지요. 욥기 1:5절은 그가 신중했다고 칭찬을 합니다.
우리의 믿음 생활에도 이런 신중함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믿지 않던 분을 전도했을 때, 오랫동안 해온 중보기도가 응답되었을 때, 조용히 뒤에서 교만과 싸우는 그런 신중함이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