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에 대한 오해
안 믿으시는 분들이 자주하는 질문 가운데 하나는 왜 구약의 하나님은 그토록 무자비하신가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구약성경을 보면 인간이 잘못했을 때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죽이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고, 이스라엘 백성을 내 아들이라고 부르시고서는 조금 잘못했다고 가차없이 징벌하시는 하나님이 어떻게 사랑이시냐고 묻습니다.
이런 의문을 가지는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그에 비해 우리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자식의 죄를 용서할 수 있는 이유는 같은 인간으로서 자식에게 보이는 죄성이 나에게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즉, 그나 나나 비슷하기 때문에 용서가 되는 것입니다. 그에 비해서 하나님은 죄성이라는 것이 조금도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런 분이 인간을 지으시고 인간이 죄를 짓는 모습을 볼 때 몸서리가 쳐졌을 것입니다. 그건 어쩌면 용서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고, 어쩌면 하나님은 숨도 쉬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천인공노할 잔인한 살인자가 저지르는 짓을 곱게 자라서 아직 거짓말이 무엇인지 모르는 천진난만한 여섯 살 소녀가 본다면 그건 용서의 차원을 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으로 대하십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으로 대하신다는 말은 인간의 역사를 통틀어서 전체적으로 볼 때 최선의 방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말합니다. 때로 순간순간 죽게 하고 쫓겨나게 하는 것이 우리 눈에는 사랑이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우리의 시선을 조금만 하나님의 차원으로 올리면 그것은 최선과 최고의 사랑의 행동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은 그런 인간의 죄를 위해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를 위해서 죽어 주셨습니다. 그 계획은 신약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고 구약의 거의 첫 장면부터 시작합니다. 사랑은 그가 보이는 희생의 크기로 알 수 있는 법이지요. 우리는 자식을 위해서는 어쩌면 그런 희생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강아지를 위해서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대상이 쥐새끼라면 더 더욱 없겠지요. 그런데 그 대상이 바퀴벌레라면 어떨까요?
하나님과 인간의 차이는 인간과 바퀴벌레의 차이보다도 훨씬 더 큽니다. 그런 인간은 처음부터 끊임없이 섬뜩한 죄로 하나님을 공격해 왔습니다. 그런 인간을 끊임 없이 올바른 길로 인도하시고, 당신의 품으로 안으시고, 오랜 세월동안 구원의 역사를 펼쳐 가시는 하나님은 인간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것으로도 비유할 수 없는 완벽한 사랑이십니다.